사랑이 어떤 느낌으로도 전달될수 없다면 그 사랑은 거짓이거나 병들었을것이다. 찬양으로 소리치고 기도로 고백해도 흩어지는 교회엔 말하는이도 듣는이도 없다. 우리 모두가 병들었어도 아프다는 말은 하지않는다.  지나친 독선과 자존심이 엉키어 서로를 밀쳐내고 내탓이 아닌 네탓으로 사람을 말한다.


1  정답없는 삶속에서 신학하기 


한나의 아이 저자 스탠리 목사는 택사스에 가난한 벽돌공의 가정에서 태어나 조울증을 앓는 아내와의 힘겨운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 아픈 이별 뒤에 아내의 자살 새로운 삶에대한 자신의 회고록이다. 스탠리는 자신의 일생을 통한 배움은 내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답을 모른채 계속 나아가는 것이기에 나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데 평생이 걸렸다. 사람들은 고통이 얼마나 아프다는것을 모른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우리가 그 고통을 이해할수 없다는것이다. 


한바탕 비를 뿌리고 맑은 얼굴을 내민다. 어둠에 가렸던 풍경이 되살아나고 잊고 지나던 일들이 줄넘기를 넘듯 제자리 걸음인줄 알았는데 어느세 높이 멀리 와있다. 아직도 믿음에 대한 질문은 꼬리를 무는데 그물음엔 답이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랑을 말했어도 그 느낌도 나만의 짝사랑도 아니었나보다. 사랑과 이별은 벽 하나 사이가 아닌 한 공간에 머물다 들어왔던 문으로 되돌아 나간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롬12:9)


2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상처의 절반이상은 가까운 지인이나 주위에 인간 관계에서 얻는다.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들을 보면 가족이나 형제 교우 친구 이웃들이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내가 아닌 당신과의 관계에서 삐걱거린다. 마음을 포기하고 안보면 그만이지만 그리스도인은 나뉠수도 없고 포기할수도 없는 희생과 언약에 관계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영적인 가족을 말한다. 신랑과 신부 아버지와 아들 맏아들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이처럼 사람은 거짓 되도 아버지와 함께한 사랑엔 거짓이 없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지만 그가 얻은 땅은 돈을 주고 산 아내의 묘지가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생에엔 답을 얻진 못했어도 400년 후에 자기 자손이 돌아와 이땅에 주인이 될 언약을 믿고 장막을 옮겨다녔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반복되는 삶속에서 그 의미를 모른체 장막을 치고산다. 얻어진것과 남겨질것 없는 세상에서 다툼을 일삼고 서로를 비방하고 욕심안에 시기와 미움과 증오로 가득하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 말하고 그 사랑이 거짓이었다 토로한다.


3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선과 악은 멀어진 마음에서 평행선을 달린다. 잘못을 고치기 위해 잘못을 자행한다면 그것은 선을 위한 악인가. 아니면 악을 위한 선인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악을 반복하며 산다. 그것들을 선이라 말하고 악을 위해 악을 사용한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가두고 가난은 부를 요구하고 빼앗고 능멸 한다. 정의는 불의를 외치지만 악은 순환될뿐이다. 은혜는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은 죄를 가둔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나이까 (요1:38)


정말로 사랑한다면 헤어짐이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와 함께라는 진리를 적용시키신다. 악을 악으로 갚고 선으로 기만하는 악을 미워하라. 빼앗아 주는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누기를 원하고 살기 위해 죽이는것이 아니라 죽음만큼 깊은 사랑을 요구하신다. 우리에 연약함으로 할 수 없기에 한몸이 된 신부임을 기억하길 원하신다. 당신과 나와의 관계가 아니라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허공을 휘두르는 빈주먹 같아 보일진 몰라도 그것은 나의 지체를 향한 주먹이다. 정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것일까. 혹시 세상에서 헤어진 부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