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길을 달려 거친 파도와 깍아지른 절벽과 만났다. 횐 거품을 물고 밀리고 뒤치며 밀어낸다. 누구도 승자가  없는 세상이란 걸 알면서  1번 국도를 지나 센프란시스코에서 모네의 그림과 만났다.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진 파도는 지쳐진 쉼을 느낀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과 자신의 형상대로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든 사람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셨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창2:1)


사람은 먹고 사는 일에 피곤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얼마 만큼이 필요한지 모르고 산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는 상관없이 서로를 속임으로 생 육하고 육신에 욕망으로 번성하며 시기와 도적질이 땅에 충만하다.  폭력과 전쟁으로 하늘과 땅과 바다를 정복한다. 이것이 변질된 인간이 만든 쉼이 없는 일곱 날이다. 멸망에 날까지 이날은 끝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지우고 쓰는 조롱 거리가 되었다.


시애틀에 하루는 흐리고 어둡다. 비침이 없는 도시는 막연한 기다림이 되고 굵어진 빗방울은 기도의 소망마져 흐린다.  빛이 있으라 함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지만 이 도시에나 사람의 마음에도 빛은 없다. 모여진 광장엔 어둠을 두른 촛불이 일렁인다. 하늘과 땅으로 자신의 보좌를 이으시고 천지와 모든 생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릴 종들에게 질서를 명하셨지만 (창1:26-31) 하늘과 땅을 황폐케하고 다스릴 만물이 야욕에 찬 목구멍으로 삼키어졌다.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은 소망 하지만 새 사람은 하나님의 입김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쉼이 없는 6일에 새 창조를 바라본다.


2  복 주신 거룩한 날 (창2:3)


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복은 자 의로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복을 얻기 위해 복을 짓는다면 얻어지는 것일까. 정말 선행을 쌓으면 복이 오는 것일까. 복이란 행복하고 원함만큼 누리고 존경 받고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일까. 복이란 창조의 말이다. 그 의미는 창조 위에 변화를 뜻한다. 흑암에서 밝아진 세상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들고 새들이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뛰논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셨다.  사이사이 마다 복이란 칸막이를 끼우시고 열릴 때 마다 생명으로 변화한다. 복이 있으라 하시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쁜 사람은 그 삶에 쉼이 없다. 물을 마실 시간도 밥을 먹을 시간도 없다. 노동이 없는 사람도 생각에 피곤함을 일처럼 느끼며 산다. 하루 중 먹고 마실 때 마다 기도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모든 일을 끝내지 못한 사람에게 진정한 안식이란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왜 창조물이 아닌 시간을 거룩하게 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늘에 소망을 두라 하셨는지 완전함이 없는 이 땅에 홀로선 쉼이 없음을 알게 하신다. 물 한 모금 찍고 하늘로 머리 드는 병아리가 기쁘고 복 되다. 인생이란 일어나서 하루 세 번 먹고 하루를 돌아서 자리에 누울 때 하늘에 쉼을 얻자.  


3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사도 바울은 누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을까. 그리스도를 향한 삶에 표본이 되었지만 세상을 위한 깊은 포옹이었다. 그가 말했듯이 유대인이나 유대 백성이나 유대에서 변질된 사마리아인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까지 모두에게 내가 빚진 자라 고백한다. 그의 삶엔 쉼이 없었지만 그의 자유로움이 놀랍다. 시궁창 같은 세상을 휘집고 다녀도 그 시간이 성서에 기록될 만큼 거룩하다. 흠이 없는 양으로 거룩한 재단에 피를 뿌리고 그 고기로 배불리는 도적들에겐 번제도 없다. 연기를 피우고 향낭을 흔들어도 하늘을 오를 향기가 없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을 벗고 보니 필자는 영혼의 은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육체가 붙잡힌 죄수도 그 영혼이 은혜를 갈망하는데 믿는 자에게서 피곤함이 더한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눅23:42) 이 땅에 지친 영혼이 쉼을 갈망한다.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그 시간이 주님과 함께하여 주소서 마음과 모습이 다르고 말과 행위가 다르더라도 성찬을 베푸시고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게하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