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들어서자 일찍이 자리한 이들이 수근거린다.. 값비싼 차에서 내려 좋은 옷으로 두른이도 있고 허스름한 옷에 먼길을 걸어 찾아온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손에 든것을 내려 놓는다. 이쁜  리본을 단 아름다운 상자에 자신을 알리는 커다란 카드도 눈에 들어오고  검은 비닐에  둥글게  불거져 나온것을 감추듯이 내려놓는 이도 눈에 들어온다. 한곳을 차지한 상자더미 속에서 전하려는 마음도 밀처져있다


1  상자속에 비밀


모처럼 가족과 함께 출애굽 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모르긴해도 아마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논란을 가져올것 같다. 성경이 아닌 영화라는 분류된 장르로만 본다면 흥미와 재미는 줄수있을지 몰라도 잘못된 표현적 사실이 전달될까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을 이끈 모세가 원작자이고 역사적 사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말씀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표현된 모습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변화를 받아 얻어지는 것이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초자연적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어쩌면 모세의 지팡이보단 그의 칼이 현실적으로  더 이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입김이 서려있지 않다. 홍해를 가르고 그들이 마른 땅을 건너 온것과 물이 썰물처럼 물러나고 개울같이 낮아진 곳을 건넜다는 의미는 다른것이다. 기적은 작은것도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지를 창조하실때 사람을 먼저 노동자로 지으시고 그로 하여금  천지를 만들어 가꾸게 하신것이 아니라 모든 창조의 끝에 인간을 지으시고 그에게 모든것을 맡기신 것이다. 예수께서 많은 이적과 기적을 나타냈어도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듯이 이 영화는 믿는다 말하면서 믿지 않는 우리를 그린것 같다. 


2  Open Box


물건을 샀다 잘못된 것이거나 맘에 들지않으면 반품을한다. 상점에선 open box란 딱지를 붙이고 가격을 낮추면 누군가 싼맛에 되사간다. 어쩌면 우리도 다른이가 사용하다  던져버린 것을 믿고사는 어리석은 사람인지 도 모른다. 신앙도 싸구려 신앙이 있다. 남이 못믿겠다고 던져버린 것을 쉽게 마음에 주어 담는다. 드라마를 보듯이 착각된 믿음을 만들며 산다. 한번쯤 모세의 물음처럼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3:11)하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해봐야 할것이다.


영화속 모세처럼 히브리인이 바로의 궁에서 얻은 지혜와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신것인가, 아니면 많은 설교자들에 말처럼 키워서 쓰려고 섭리하신 것일까.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에 다르게 답변하신다.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선 인간의 지혜와 방법이 아닌 자신에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한계점에 도달한 모세의 절망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당당함이 주께서 말씀하시고 찾으려는 모습이다. (신34:11-12)  


3  비어진 상자


체울수 없는 것이 인간에 욕망이다. 더 많이 얻어야 되고 더 많은것을 가져야 된다. 잘못된 자리에서 더 큰것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다. 왜냐하면 우린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말조차 탐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 희생이 있어야 만족할수 있는게 세상에 버려진 우리들의 삶에 방식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거짓 사랑을 말하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은 다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롬2:18-32) 우리가 세상에서도 버려진 이유는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다. 사람에 아들로 살기에 힘들고 고달프니까 모두가 절망의 바닷가에 서있는 것이다. 감독은 지팡이가 아닌 믿었던 칼을 바다에 집어 던지라고 Lets Go를 외친다.


비어진 상자 속엔 전한 마음도 찾을수 없다. 우리가 기대했던것은 무었일까. 살기위해선 온갖 것이 다 필요하다. 새벽 기도회에 외치고 구하는 소리는 몇톤 추럭으로 끌고 온다해도 부족 될것이다. 이처럼 우리에 믿음은 생각만큼 복잡하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순 없는 것인가  모세는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를 구원하셨듯이 물에서 건져내셨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어린 양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에 구원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시다. 믿음은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할수록 얻어지는 것이다.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면 부르는 그것만으로 얻고자  하는것에  희망을 갖는다. 하믈며 사람에 이름이 아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너희는 나에 이름으로 구하라. 예수 그이름은 부르는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지난 한해동안 당신이 버리려했던 빈 상자속에게서 예수 그 이름을 찾을수있기를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