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을 다치고 때 아닌 감기로 한동안 몸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겨드랑이 사이에 끼인 목발을 바라보며 지난 행복을 느낀다  그동안 행복이란 말을 잊고 살아온것 처럼 행복은 가까이서 멀어졌었나보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 벗어날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과 불행 사이에 끼인 목발을 바라 보듯이 절뚝거리며 걷고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심리적으로 얻어지는 기쁨과 만족감이라면 완전한 행복이란 찾을수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행복을 원하고있다.


1  세탁기 앞에서 


힘겹게 세탁물을 옮기고 통 안에 색을 구별하여 넎었다. 벗겨진 옷처럼 기억도 버려진 것일까. 소리 내며 보이지 않을 속도로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서 오래지 않던 일들이 씻기듯이 소리치며 앙탈을한다. 엉키고 부딛치며 묻어난 추억을 털고있다 행복한 일들은 감추이고 불행했던 일들이 행복과 어울려 헷갈려 보인다.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착각속에서 울며 웃고 산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오래 된 사귐으로 부터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시간이 흐른만큼 반가움과 기다림에 이어진 기쁨이었는데 그 긴 만남이 가식으로 받아드려졌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다. 나만의 행복은 착각이었나. 가난함에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운말이 될까 조심한 기억마져 거짓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그를 만날 용기가 없다. 그를 향한 진실이 사라진 것이다.그리고 아믈지 못할 아픈 기억이 되었다. 행복은 세탁기 문 마냥 마음이 닫치면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가슴에 그린 것이다.그리고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서 묻어난 세월이 한줌만큼 짜이고 쪼그라드는 움추림을 본다.


2  시내산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애굽에서 나온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그들을 성결케 하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아직 계명이나 율법 그리고 번제의 의식조차 모르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결을 요구하신 것이다.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기념하는 성찬식이나 세례식을 말함도 아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이 있다. 그들로 옷을 빨게 하라는 것이다.수천년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내 귓가에 들린다. 네 옷을 빨아라. 환청인가 아니 귀가 터지게 들리고있다.


오랜 삶에 끝에서 그들이 함께 가지고 나온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만에 삶에 방식과 습관적인 행동이다. 부하건 가난하건 우리도 우리만에 방식이 있다. 겉으로 들어난 것에 평가되고 구별 되어지며 무시당한다. 그들이 신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에 두툼해진 정욕에 옷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터 멀어지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벗지 못하는 미련이 우리를 붑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벗을뿐 아니라 씻기를 원하신다. 그것들로 부터 영원한 결별을 요구하신다. 이런 마음이 열리지 않는한 우리는 삼일에 하나님을 기다릴수 없다. 어제와 오늘에대한 씻김을 찾을수 없다면 내일의 소망은 멀어진 것이다.


3  버려진 행복 앞에서 


나때문에 누군가가 불행해진다면 그보다 더 자신에게 혹독한 말은 없다. 특별히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람이 아니고 단지 내 주위를 가리는 늘어선 울타리를 보고 판단해서 그런거라면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내게 처진 울타리는 오늘도 내일도 감출수가없다. 오히려 판단하는 그들의 눈 안에그들이 보지못하는 자신에 모든것까지 벗어 버리는것이다. 내 안에 감추었던 그들을 향한 미움 원망 모든 분노로부터 자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판단 받는 그보다도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 닫혔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죽을수밖에 없던 죄인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드는 것이다. 다윗에 자손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도 힘든 나에 삶은 벗고 씻는 일에 연속이다. 하지만 날마다 주를 만나는 일이기도하다. 


행복은 내가 아닌 나보다도 더 낮은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열린 마음이다. 하지만 그리한다 하여도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은 버릴수가 없다. 수치스러움에 벗겨진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뿐이다. 후일 나에게 자랑스런 새로운 울타리가 마치 나에 결과물처럼  생겨난다하여도 그것조차 오늘 벗지 못한다면 내일의 씻김도 주와의 사귐도 없다. 사도들의 이어진 외침처럼 내가 사람의판단을 구할 것인가를 반문하며 살아야겠다. 행복의 기쁨은 내게 맡겨진 사랑하는 이들을 그들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기쁨을 바라는 것이다. 이 기쁨이 높은 주님의 마음안에서 사귐이 될때 정말로 당신은 주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