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지으신 모든 창조물에 위탁 관리할 대상으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어 만물 위에 하나님에 형상을 보이신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이 것들을 지키고 보존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땅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다. 자신에 것이 아닌 주인의 영광을 위한 피조물로서 대리인으로 직임을 받은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주인의 것을 자신에 것인냥 탐하며 사는 우리들에 육체가 돌아 갈곳은 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마치 아담이 주인에 것을 탐하여 말씀을 어겼듯이 탐하는 우리도 그리 될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1  보냄을 받은 사람


이 땅에 사람들은 두가지 중 하나에 일을한다. 그 하나가 보냄을 받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맡겨진 일이다. 일은 다를지 몰라도 결과는 섬긴다는 면에서 같다. 그들 모두가 주인으로 부터 위탁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섬기는 주인에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서로가 주인을 바라보는 존중함도 있어야 되고 주인의 재산을 지키고 안전히 보호하려는 열심도 있어야 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인의 뜻을 받아 들이는 일이다. 인정받고 능력있는 자들일수록 순종을 더디한다. 이유는 주인에 영광을 자신에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주인은 믿을만한 종에게 자신에 포도원을 맡기고 멀리 떠났다. 종은 얼마간 주인이 만족할 만큼 열심을 다해 결과를 주인에게 보내왔다. 하지만 여러 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주인의 것을 탐하기 시작한다. 더블어 주인에 대한 불평도 높아갔다. 모든 것이 자신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소식을 모르는 주인은 다른 종을 보내어 알아보려 하지만 모욕과 매질을 당한체 돌아오거나 죽임을 당하고 만다. 참다못한 주인은 아들을 보내어 자신이 약속대로 돌아왔음을 알리려하지만 그들은 상속자를 죽임으로 이젠 포도원이 자신들에 것이 되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2  버림받은 사람들


신이 죽었다고 외친 자가 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 그와  생각을 같이 하던 자들은 창조자이시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들의 교만함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능력을 지우고  과학적 이론과 합리적 사고로 젊은이들을 불사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과 믿음이 아닌 현대인이 인정할수 있는 신앙으로 변화 시키자는 그럴듯한 논증으로그들이 말하는 죽음에 신학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죽었다. 신은 그들에게 이땅에서 그리 외치라고 보낸 것이 아닌데 탐욕한 그늘이 신의 영광보다  더 밝다고 착각하며 어둠에 묻힌 것이다.


어리석다고 말할수 없는 한사람에 이야기다. 그는 초기 이민 교회에 큰 힘이 된 자였다. 그의 사업적 성장은 교회와 더블어 하였다하여도 과언이아니다. 하지만 목사들의 영리적인 도덕성에 교회를 떠나 자력으로 교회를 구입하고 개척을 했지만 한해가 멀다않고 많은 목회자들이 그에게 좆김을 당했다. 친교 시간은 구역질나는 목사들의 잘못 된 얘기들로 이어지고 황페한 교회는 그를 추종하는 몇만이 남아 자신들만이 참된 신앙인이라 외친다. 그들은 덕망있는 큰 종을 모셔보자하고   유명한 목사를 청빙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회당을 차고 넘치게 체웠다. 장로는 신이났다. 목사가 요구하는 모든것을 다 수용했다. 어느날 목사는 장로와 함께한 식탁에서 자신의 능력에 댓가를 더 요구한다. 사례비를 두배로 더 올리고 보너스 여섯배를 요구한다. 장로는 생각한다. 매달 더 올리는 사례비에 짜증도나지만 어짜피 모든 헌금을 다 주어도 예전보단 지금 상태가 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협을 이룬 그들은 기분 좋은 식사를 하지만 식사도중 목사는 심장마비로 죽고만다. 오랜 후에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눈 한마디 나는 이땅에서 참된 종을 만나지 못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3  주인의 고뇌


이사야 선지자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사52:5)우리에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특권이있다. 주께서 인정해 주시는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오히려 주에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믿는다는 유대인들을 향한 독설을 들어보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하지 말라는 네가 도적질을하느냐 간음하지 말라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한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하느냐 기록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욕을 받는도다. 


모두에게 다른 주께서 주신 맡겨진 일이있다. 그 일은 바로 당신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결과는 당신이 안고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명은 갚음이 되질 못한다. 오직 은혜만이 갚음이 되기 때문이다. 일은 실수도 있고 모자람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나타남은 충만한 은혜를 넘치게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마지막 다다름이 아니라 영원에 대한 시작이기 때문이다우리는 맡겨진 시간 속에서 주인의 영광이 나타나길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의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