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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많은 말이 있다면 그 그림자는 은혜 일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증거한 교회에 항상 은혜가 있기를 기도했다.  이 말은 우리안에 은혜가 없을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그는 히브리서에 다시 말하기를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히4:10)  만일 우리 안에 은혜가 없다면 그건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할것이다 반면 선한 일꾼이 많다면 은혜에 대한 증거가 풍성할 것이다


1  은혜를 맡은 자들.


우리는  마음에 감동이 일거나 원하던 좋은일이 생기면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 반면 어려운 일이 찾아오거나  곤경에 처하고 하던 일에 복병을 만나게 되면 시험 받았다고 너무 쉽게들 말한다. 과연 그런것일까.  축도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려 자신에 가장 귀한 아들을 대신 죽게하셨다. 우리 죄에 대한 대속물로 내어 주신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함은 자신을 선한 청지기와 같이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에서 이루셨다는 것이다. 성령께선 이 증거를   거듭나게 하시며 이들을 도와 주께로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이런 말씀의 증거가 신자들을 통해 나타날때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은혜 받았다  말함은 우리의 감정이나  좋은 일에대해 나타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은혜 맡은 선한 청지기의 본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내게 주신 은혜는 나만  받고 구원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한 다른이들의 몫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 외침처럼 나는 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안타까워하며 봉사하며 은혜를 나누려 할때 비로서 내가 은혜 받은 자임을 고백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받았다  말함은 주께서 우리 안에 나타나심을 말하는 것이다.  


2  선한 청지기 


선하다는 말을 나름대로 해석하면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떠나서 타인의 잘못과 아픔을 나에 것처럼 바라보며 치유하는 것이다. 이말은 진정 형제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선한 행위로  다른이에게 나타냄과 자랑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은 나는 나고 남은 남이다. 손해볼수 없고 용서할수 없는것이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은 주님의 말씀처럼 내 몸과 같이 사랑할수 없기 때문이다.문제는 내몸과  같이 사랑할 이웃이 누구냐는 것이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말씀하시며 미워하고 용서할수 없는 그들이 나눔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뜻과는 다르게 우리 안에 있는 이들만을 바라보며 지키지도 못할 부끄러운 고백을 매주일마다  한다 .내 원수를 사랑하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만약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부당하게 손해를 준 자가 있다면 친절하지 않다 해도 당신을 나쁘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께서 그것이 선한 것이냐  묻는다면 멈춰서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사람들은 그리할지라도 주님에 은혜를 받은 자는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한 청지기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나눔의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악한  이웃도 있다. 게을러 굶주리고 이유없이 상처주고 약한 이들을 학대하고 부끄러움을 자랑하고 갚지 않을 빚을 지고 사기 공갈  심지어 살인 강간의 행위까지 세상에서 악하고 추한 이들이 있다 . 이들을 나의 이웃이라고 말하기엔 마음에 빗장이 굳게 닫혀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쓰러지고  병들고 깨지고 망가져 버림을 받았다면 그리고 지치고 거친 손을 내밀며 당신에게 구원을 외친다면  외면 할것인가 .버려진 이들을 보살피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그들은 감추이고  내가 받은 상처만 더 크게 쌓여져 보인다.


3  책망할 것이 없는 자


행위는 따라 하는듯 하지만 뒤틀린 마음을 감추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가 보이려는 선한  일들이 감춰진 마음과 다르다면 그건 거짓과 다름이 없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페 된것이 인간의 마음이다.우리는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고 성령에 도우심을 바래야 할것이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이말은 주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이요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거짓 없이 하는 일과 선한 마음이 주님과 합하여 같다는 것이다.그럼 어떻게 하여야 이런 기쁨을 얻을수 있을까.


제자들은 삼년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며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들은 미숙함과 두려움으로 책망 받을 말과 행동을 하였어도 주님은 그들이 나와 함께한 자들이라고 축복하신다. 아브라함과 다윗도 거짓과 죄로 책망 받았지만 하나님께선 그들과 함께 하였다고 말씀 하신다.그럼 그들의 잘못된 행위는 죄가 아닌가. 아니 거짓은 거짓이고 죄는 죄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죄를 사하시고 다스리시는 분과 함께 동행 하였다는 것이다. 주께서 그들을 나의 친구요 나와 마음이 합한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4  주님과 함께라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이말씀은 은혜 받기위해 죄를 더 부풀리자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은혜를 맡은 자라면 그들의 자리에서 하기 어려운 이해심과 친절이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굴욕적이고 당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멸시를 당한다 해도 나도 그들과 같았던 죄인이었음을 기억하고 내죄를 내가 용서 할수없었듯이 그들의 죄도 내가할수 없는것이다. 다만 자신의 옛사람을 바라보듯 안타갑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갈때 나는 할수없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제하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선한 청지기는 주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우리는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실수와 잘못이 있다 하여도 비방하거나 욕해서는 안된다. 기도와 간구로 그가 다시 은혜의 자리로 나갈수있게 도와야 한다.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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