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모여진 거리는 식당과 상가로 줄을 잇는다. 교회마다 탐을낸다. 돈과 수를 체울수 있다면 실제로 정령지가 되기도 한다. 악한 종들은 프리미음을 부른다. 교회란 이름으로 선교와 구제를 하려면 적잖은 물질과 노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목자에 다툼은 은사와 상관없이 많이 기울어진 저울에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계명에 끝자락인 탐내지 말라는 벽에 부딪혀 머리가 깨질것 같다.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어도 옛 것을 버리지 못한 무리에게 새것이 존제할까. 

 

1. 신앙으로 배부른 자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으리이까  네가 생명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선생이여 나는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다 지켰나이다. 청년은 자신있게 예수와 제자들을 둘러본다. 더 덧붙일 말이 있다면 그 중 무엇이 자신이 행한 일 가운데 가장 돋보일까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는 그 이상으로 잘난 사람이다. 듣는 제자들은 침묵한다. 

 

천사와 악마는 같은 얼굴을 한다. 악마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림자를 밟으며 목을 조르지 않는다. 가룟 유다에 입맞춤처럼 천사의 얼굴을 하고 달콤한 독을 뿌린다. 우리 마음에 항시 선과 악으로 가득하다. 어둠은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것 처럼 나는 어둠에 있고 빛을 따라 미친듯이 스며든다. 모든게 다 이지만 항시 남겨지는 어둠에 나는 존제한다. 

 

2  돌판에 세겨진 계명

 

하나님이 모세에게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깎아 만들라 하신다 (창 34:1)  돌처럼 굳은 마음이 다시 깨어지고 세겨진다. 한 계명이라도 자유로울수 있다면 사람에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 것 마져 자유로움이 없다. 죄라는 속박에서 벗어날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내가 오늘 계명을 완전히 지켰다고 내일 그 계명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우리가 시험에 빠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 세기동안 원수처럼 지내온 두사람이 만나 평화를 외친다. 한마디 말에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동안 왜 벙어리처럼 살았을까. 하나님도 못하신 일을 그들이 했다고 모두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간다. 내림 길에 힘이 약해 떨어지고 실수로 떨어지고 부딪혀 떨어지고 바람 불어 떨어지고 거짓된 자유는 죽음에 행진을 계속한다.

 

3  궤 속에 넣은 증거판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조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출 40:20-21) 

자유란 그 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날때에 비로써 자유라 말할 수 있다. 정말 우리는 자유한가. 어쩌면 믿는자가 말하는 자유란 커텐을 치고 어둡고 구석진 서랍에 감추어 드러날까 조바심하는 두려움이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은 죄에서 벗어나 생명에 빛으로 나와야한다. 자유란 상대적이다. 예수를 심판한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요 19:10)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두려움과 의심은 오늘에 빌라도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이 심판을한다. 갇혀진 어둠이 어둠을 알지 못하고 의심과 두려움을 끝없이 반복한다.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시다. 믿음에 길은 하나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