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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중에 니고데모와 같은 인격과 인품을 가진 신앙인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그에대해 말하기를 즐겨하지만  그가 주님과 나눈  대화는  진리중에 진리이다. 유대인 가운데에서도 유능한 자이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그가 다른 유대인들의 눈이 두려워서 밤에 찾아 온 것이라고 많은 설교자가 시작을 그리 전하지만 니고데모는 거침이 없는 담대하고 당당한 사람이다. 후일 그는 공회에서 사실적인 증거를 들어 예수를 변호하였고 달아난 제자들과 달리 예수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한 의로운 사람이기도하다. 


복음을 증거한 사도 요한은 한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하여 광야에서 외쳤던 세례 요한이 전한 은혜의 시작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까지 듣고 보고 있는것이다.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는듯한 이 놀라운 대화 속에서 믿는 이들이 작은 성경이라 부르는 요한복음 3;16절에 말씀도 증거 된다. 


1  논쟁의 시작


예수는 어떤사람인가. 나는 그를 오랫동안 듣고 보아왔다. 아직도 우리 형제들은 당신이 일으키는 새로운 바람에 혼란해하며 당신을 잡을 궁리를 하고있다. 죽은 세례 요한에 이어 의혹과 두려움으로 이 성안이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할수없는 일들이 당신을 통해 일어나고 율법자이고 바리새인인 나도 당신의 말에 찔림을 당했다. 누구도 우리에 잘못을 성전에게 외친자가 없다.  나는 예수는 누구인가 알고싶어졌다. 낮엔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들로 둘려있기에 밤에 당신의 관한 궁금증을 안고 찾아왔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이라는 오랜시간동안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선지자들의 입에 자신의 말을 두어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돌이키려 하였지만 그들의 완악한 죄악은 하나님의 말이 듣기 싫어 모욕하고 죽여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율법을 자신들에 이기적인 생각으로 해석하였고 한쪽은 타버리고 반대쪽은 익지도 않은 뒤집지 않은 빵이 되버린 것이다. 이때 예수라는 한 청년이 사람이 할수없는 많은 이적과 표적을 일으키며 자신들과는 다른 율법적 해석과 행동으로 백성들사이에 소요가 일어났다. 나는 무조건 잡아 죽이려는 유대인과 바리세인들 사이에서 그에대한 진실이알고 싶어졌다.


2  확실치 않은 믿음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니고데모는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낸다. 예수에 대한 의심과 진실을 알려면 먼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유대인이 사람이 할수없는 표적을 행한다면 분명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다. 생각이 다른 형제는 사단에 능력이라고도 하지만 그에 의로운 말과 행위로만 본다면 분명 하나님께로 부터 능력과 보내심을 받은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는 율법과 다르게 판단하고 죄인들과 어울리며 하나님만이 하실수있는 죄사함을 말하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며 바리세인이 행하는 율법적 행위를 비난할뿐 아니라 성전을 물질로 돕는 장사꾼들을 내좆고 자신을 하나님에 아들이라고 칭한다.그가 던진 이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하기엔 못마땅한 것이다. 니고데모는 자신에 생각처럼 예수는 정말 하나님께로 부터 온 선생이 맞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그리고 당신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분이 분명하다면 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냐고 묻고 있는것이다. 


3  너희가 알지 못하는 이유


네가 나를 하늘에서 온 선생이라고 부르느냐. 정말 네가 하늘을 아느냐. 모든 사람이 다같이 올려 볼수있는 하늘이지만 다른 하늘도 있다. 그건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이다. 믿는 이들은 날마다 손을 들고 자신에 기도가 그 곳에 전해지길 원하지만 오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주님 앞에 가져갈수 없다면 볼수도 없는 것이다. 주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을 말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다면 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할지라도 의심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3:3)


니고데모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파온다. 율법을 경건히 지키며 바리새인 중에서도 공회원으로 유대인의 선생인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에 백성으로서 하나님의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그는 예수께 반문하고 싶었다. 나는 유대인이다.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주께서 주신 율법을 준수하고 가르치는 선생이다.그런 내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인가.나는 당신의 제자처럼 백성을 갈취하는 세리도 아니고 더욱이 죄인도 아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처럼 섞여진 자손도 아닌 할례받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자손인 것이다. 나는 당신의 말을 인정할수가 없다.


4  우리들에 니고데모


교회 안에서 사역하는 이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문제는 구원에 대한 확신감이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드려 제자훈련 ,성경 공부 ,봉사와 친교 ,선교사역까지 모든 가르침과 행위까지 열정을 다하지만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물음은 다시금 되돌아 온다.당신이 아무리 모태 신앙을 주장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일지라도 주께서 말씀하신 거듭나지 못한다면 하늘나라를 볼수가 없다. 거듭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구원 받은자가 아니다. 당신이  드리는 기도는 응답이 없을 것이고 당신이 올리는 찬양도 향기가 되어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신이 자랑하는 헌신도 상급이 없음은 당연하다. 당신의 마지막 변명은 나는 주님을 인정할수 없다고 니고데모와 같은 생각을 할것이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니고데모와 사도 바울이 참으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닌 환경과 굳힘없는 성격과  율법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도자서의 당당함까지 하지만 그 둘을 갈라논 한가지가 있다. 세상적으로  니고데모가 갖고있는 세상적인 높임보다 사울이 거듭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작은 바울이 된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세상에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사는 사람으로 갈린 것이다. 우리도 울림의 묵상으로 자신이 무엇을 보고 사는가를 깨달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