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을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달린듯한데 내인생 육십에 출발점에 돌아와 섯다. 멀어진듯 이별하고 가까와질듯 만날것 같았느데 지금은 비어진 공간과 작별을 한다. 열지도 못할 가방은 왜 무겁게 들고 다녔는지 무작정 싸우며 담으려했던 마음조차 아프다. 그리고 나를 따라 돌고있는 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수있을까.


1  복 사세요


사람이 복을 받고 산다는것 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할수만 있다면 돈이라도 주고 사고픈 것이 복이다. 믿는 형제들도 복은항시 관심에 대상이다.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효도하고 자손이 번성하며 근심둘 일이 없다면 우린 복 받았다고 말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지혜를 빌어서라도 배우고자한다. 정말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편은 복있는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고 주님의 산상복음도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바라보신다.


시편 기자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악인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말고 하나님을 대적할 자리에 앉지말라고 가르친다. 그럼 착한이들과 함께하면 복을 받는 것인가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라고 말한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6).  말씀이 내안에서 마음이 되고 믿음이 시작되면 결과에 상관없이 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2  복 되 팔수는 없나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없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7).  부모에게 받은 아픔이 싫어서 아이에겐 되물림하고 싶지않았다. 만족할 만큼 다 하였다 할순없지만 원망은 피하고싶다 그러나 예전에 주고 받던 상처난 모습을 아이를 통해 다시 바라본다. 내가 심었던 원망과 수치스러움이 되 돌아와서 나를 찌르듯 야곱의 속임도 다윗의 범죄도 심은대로 거뒀다. 


하나님은 그들에 통곡을 바라보시고 소리치던 울림을 심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주님의 말씀 앞에서 매번 부딪치고 좌절하며 그러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당신을 수고하고 그 짐이 무겁다 말씀하신다.   


3  복있는 사람


설교자들은 욥이 받은 많은 고난이 우리와 같다는 공감을 형성하고 믿음을 지키는 교훈에 장으로 삼는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면 하나님께서 욥을 고난이 아닌 복있는 사람으로 말씀하고 계심을 알수있다. 하나님은 욥의 중심을 보시고 복이 있다 하신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1:1). 반면 사탄은 욥의 소유물을 복으로 간주했다.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욥1:10). 사탄에게 속은 하와가 보암직했듯이 우리에 눈도 소유물이나 자식 자랑 능력 탁월한 지혜 심지어 육체까지도 복으로 간주하고 희망한다. 하지만 주의 말씀은 믿음과 순종 곧 정직과 자신을 향해 경외하는 마음을 복되게 하셨다. 


복있는 사람은 심기를 잘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섬기며 자녀를 훈육하고 형제를 돌보며 이웃과 화목한다. 이건 물질에 소유만으로 되는건 아니다 주의 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고는 심을수 없다. 돈이면 다 할수있다는 생각은 돈벌고 건강을 챙기겠다는 어리석음과 같다. 내가 만약 복을 받았다면 무엇을 심었고 내가 만약 복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을 심었나 기억의 결과가 엇갈린다 해도 나를 사랑하신 십자가를 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 눈물도 씨앗에 담겨지기를 간절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