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지를 향해 소명을 갖고 떠나는 선교사가 있다. 오지와 험지에서 수고하는 형제를 바라보면 그들에 면류관에 빛이 더하기를 소망한다. 사도들에 시작과 목적은 땅 끝에 있다. 땅 끝이란 낮선 길에서에 새로운 만남이다. 성서에선 다른 종족과 언어가 다르고 믿지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선지서를 보면 많은 선지자들이 자신에 나라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하나님에 말을 전했다. 그들은 듣지 않으려 했고 그 입을 막으려했다. 그리고 이들과는 다르게 이방을 향해간 선지자 요나가 있다. 

 

1  세번에 두드림

 

전도와 선교를 구분하려 하지만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에 뜻이 전달되고 말이 전달되어진다는 의미는 같다. 요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에 뜻이 싫고 말이 싫어 다시스로 도망가려 하지만 풍랑을 만나 물고기에게 삼켜져 하나님이 뜻하신곳에 토해진다. 두번째 임하셔서 저 큰 성읍 니누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 (욘3:2) 요나는 그들에 회계와 구원의 간절함에 화가났다. 하지만 주께서 나에 기도와 다르게 행하시니 원컨데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4:3)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욘4:9)

 

믿는자는 말씀으로산다. 주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마4:4) 마귀에게도 말씀하셨다. 사람이든 마귀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는 같다.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천지를 이루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진행형이다. 부패한 인간은 악한 마음에 거짓을 드러내고 자랑을 일삼지만 참된 종은 자신에 입을 다물고 주인에 말을 마음에 세긴다.  

 

2  멀리 멀리 갔더니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으려 달음질하고 얻으려 힘을 다하면 잊은듯한 말에 붙잡힌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 말씀이 들리면 멀어진 마음이 실은 더 가깝다고 느낀다. 요나가 그러했고 아브라함도 모세도 이어진 주에 종들이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다. 멀어진것은 가까운것에 이음이다. 당신에 존제가 내 안에 느껴질때까지 늘어지는 고무줄 마냥 앞으로 힘겨운 걸음을 한다.

 

이곳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도 수없이 달아나는 생각에 머릿속은 좀이 파듯이 수없이 페인 구멍을 본다. 비무장지대에 뼈대만 남은 건물벽에 그려진 비누방울 처럼 가득찬 총알자국이 다가온다. 들림이 없는 종을 요나와 같이 토하소서. 이곳에 야곱에 단을 쌓고 야곱에 새 이름을 주소서. 멀리 멀리 갔더니 이제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3  당신에 땅끝은 어디인가

 

땅끝이란 존재하는가. 등 뒤도 보지 못하면서 반대쪽을 향해 달음질 하는건 아닌지 등짝처럼 붙어있는 니누웨가 싫어서 배를 탄다. 고래가 나를 삼키고 캠핑을 간다. 나에 땅끝은 나에 등 뒤에 있다는것을 상심의 끝에서 알게 되었다. 피붇이 같은 이들이 세월에 걸음만큼 멀어져있다. 미움과 다툼은 아직도 내안에서 소리치는데 어두운 내 그림자에 쌓여 빛이없다. 간혹 돌아보려 하지만 뒷걸음쳐 등을 돌리며 달아난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모든 식물을 너희에게 주노니 (창2:28-30) 우리는 바벨탑처럼 높고 아브라함이 사방을 둘러본것 처럼 넒고 야곱이 얻은것 처럼 많은것을 누리고 살기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과 너희와 관계속에 나눔이다. 그림자를 판 동화 속에 남자가 비극이라면 사도들에 그림자만 밟아도 병이 낫는 성령에 역사가 그들과 너희와 내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