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서 사랑을 외치는것 만큼 감동적인 것은 없다. 당신에게 전부를 다 주었는데 이기적인 사람에겐 원망으로 되돌린다. 왜 나에겐 받아진 사랑이 없을까 사랑은 주는 것이라 말하지만 심령이 가난한 이에게는 사랑은 받는 것이다 하지만 얻지 못한 원망은 주는 이에 잘못인가.
예수는 사랑은 서로에 몫이라고 말한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12) 서로 사랑하라 어느 한쪽이 비껴가도 사랑은 눈이 먼다. 

 

1  Lie

 

주운 돈을 쥐고 주인에게 가는 동안 소란이 일어났다. 큰 돈을 지갑에서 잃어버려 종업원에게 tip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바닥으로 쏠리고 나는 쥐고있던 마음마져 감춰버렸다. 고작 $3로 인해 주고 받을 기쁨이 서로에게서 벗어났다. 나는 걸려진 tip 통에 가룟 유다의 마음까지 던져버렸다.

 

주님은 진실이라는 말씀을 유독히 하신다. 만물보다 부폐된게 사람에 마음이라면 진실은 사람에게 없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다 해도 거짓은 모든것을 망가트린다. 작은 열매 하나를 바라보고 달콤함에 속아 온 세상을 죄로 가둔 사랑 안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짓을 담고 사랑을 말하지만 그 사랑은 거짓을 품고있다. 진실한 사랑은 신에 용서함이다. 신자는 죄에대한 사죄 보다 사랑의 용서를 더 많이 구한다.

 

2  Selfish

 

예수는 유대인들로 부터 위험한 곤경에 처한적이 여러번 있다. 그 때마다 제자들에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회당에서 성전에서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서 조차 그들에 모습은 알 수가 없다. 광화문에서 서로를 지키겠다고 죽기까지 싸워대는 이들을 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알 수 있는것은 잡히시던날 밤에 그들이 두려워서 도망쳤다. 

 

말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게 사람에 마음이다. 그만큼 이기적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다. 자신을 향한 배신과 모욕과 나약함으로 갈갈이 찢기어 흩어질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이 상대에게 줄 것은 배신과 모욕과 상처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진심으로 사랑한다 말 할 수 있을까. 

 

3  Enemy

 

태어나면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으로 세상에서 만나지만 동지보단 적으로 돌려진 이들이 더 많다. 그만큼 저 웬수 같은 놈이란  소리를 듣고 산다. 적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사랑한다는 아내를 골프채로 때려 죽이는 저명 인사 병들었단 이유로 약자를 괴롭히고 죽이는 환자가 아닌 살인자들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쓸모없는 자식은 죽여서 저수지에 던져 버리는 이런 비정한 사람들과 엉켜져 살고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 21:20)

말씀과 멀어지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신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심지어 원수까지도 말씀으로 가려진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한다. 적이 두려운게 아니라 적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더 두려운 것이다.

 

4  Cross

 

색이 같고 모양이 같다고 해서 다 보석은 아니다. 투박하고 칙칙해도 원석은 마음을 설레게하는 값비싼 보석이다. 요즘 교회 안에는 비슷한 신자가 많다. 비슷하다는 것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까  어쩌면 사랑을 자신에 것이라 믿는 잘못 된 생각을 한다. 사랑은 주고 받을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달하는 원석이다. 받는 이가 그것을 얼마만큼 깍는 수고를 하느냐에 광체를 더한다. 사랑에 원점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서로에게 담겨지는 진심이아닐까.

 

신자는 육체적 범죄를 가능한 하지않는다. 그래서 회개를 모르는 신자 ,교회가 늘고있다. 미칠듯한 시끄러움에 혼을 빼앗기고 지옥같은 뜨거움만을 느끼게한다. 이것을 우리는 찬양이고 성령이라 말한다. 성도는 도둑질하고 강도짓하며 회개를 부르짖는자가 아니다. 우리 안에 그런 악한자는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숨겨진 죄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결단코 서로를 사랑 할 수 없다.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란 죄에 씻김을 기억하고 주님에 마음을 전달하는것이다.

 

5  The way

 

열쇠를 찾지못해 집에 못들어 간적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샤워도 하고 밥도 먹고 할텐데 정말 화 나는건 집에 들어 갈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셨다.주님 보시기에도 이 악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것일까. 이 쓴 잔을 물리치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말씀과 함께 존재하신다. 말씀이 없다면 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진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제는 죄가 사람을 미워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상은 사랑 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죄가 있는 곳). 형제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죄를 갚으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에 죄를 죽음으로 갚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임제하심을 말한다. 주님은 어두움을 바라보시는게 아니라 등불을 들고 서있는 당신을 바라보신다. 진정한 신자는 금지된 행위를 파괴한 뉘우침이 아니라 말씀안에 계신 주를 외면하는 회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