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고 묻는 제자에게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린 성전이 무너질거라 말씀하신다.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이 없이 눈으로 바라다 본것은 눈에서 사라질것이다.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성전에 주인이 되어 섬기는 마음을 잊어버렸다. 제사장은 아버지의 영광을 빼앗고 바리세인은 권위를 자랑하고 성전은 장사꾼의 노략질로 곳간을 채운다. 내 아버지의 집은 엎드림이 없는 기도하는 집이다. 바라만 보는 집이다. 이거리에도 흔하고 저거리에도 흔한 장사꾼에 집이다.

 

1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한 자더라(요11:50)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심문하던 대제사장의 입에서 나온말이다. 포도원에 종들이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이고 자신들은 거짓 상속인이 되어 노략질과 거짓 됨을 일삼는다. 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을까.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말씀은 누구를 위한 유익인가. 오늘도 포도원엔 종들이 아닌 강도들이 산다.  

 

목사는 교회에 당회장이다. 장로는 교회를 감독하고 치리하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단상은 목사만을 위해 준비 된 공간이고 모든 성도는 그의 말을 듣는다. 직분자를 세우고 예배를 인도하고 헌신자을 위한 축도를 한다. 건물과 통장에 자신의 이름을 세기고 은 삼십을 꺼내준다. 낮은 음자리를 지우고 곡성을 부른다. 담장 너머로 신음이 새 날까 두려워 두더지 굴을 판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창1:3-5)

 

2  직분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눈이 내린다. 겨울내 갇혔던 푸른 잎들이 한아름 물을 먹음고 흰 꽃을 피운다. 꽃이지고 볼 수 없던 향기가 잎마다 청량함을 느끼게 한다. 주님은 교회를 나무와 가지와 열매로 비유하셨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져 버려질수 밖에 없지만 모세의 마른 지팡이 처럼 싹이 돋아날 은혜를 바라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이말에 공통점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이 쌓고 만든 곳은 사람이 살기 위한 성이다. 권력과 욕심을 다투고 싸우는 쌈꾼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다. 별을 좇아 갔는데 내 아들 예수는 보이질 않는다.

 

각기 독방을 쓰기엔 집이 너무 작다. 집사 서리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협동장로 시무장로 전도사 부목사 협동목사 목사 그외에도 방마다 장이 있고 부마다 장이 있다. 그 중 제일 크고 화려한 방은 돈과 말에 양쪽 주머니를 지닌 자이다. 싸움을 부축이고 밀어내고 좇아내고 새로운 직분을 판다. 아부와 허세로 기름진 배를 체우고 꼬리를 흔드는 개들에게서 충성 맹세를 받는다. 학벌이 노예 증서 같다는 사회 풍토와 직분을 얻기 위해 사람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교회나 다를게 없다. 이 땅이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렘5:30)

 

3  헌금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것이 무엇일까. 기도의 간절함도 소망의 그림자도 그릇 된 물질에 욕망인지 모른다. 오늘도 성도들은 벽돌을 나르고 기둥을 세운다. 애굽에서 처럼  피라밋을 만들고 궁전을 세운다. 죽을 곳과 살 곳을 저희 손으로 만들고 파도에 쓸리듯 무너진다. 헌신과 믿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결코 크고 화려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건 사기다. 보리떡 하나를 나눠주고 돌려받는 십자가를 그린 주머니가 이 세상에 비추이는 빛이라 말한다, 

 

성전 목사 직분자 헌금 이 모든것은 거룩한 것이다. 모두가 뒤틀렸어도 하나님의 것은 거룩하다. 거짓과 교만 욕망과 부정함이 담겨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거룩을 가장한 것들이 있다면 죽어야 산다. 애굽에서 죽음을 넘어서 버리고 광야로 나왔듯이 행진하는 백성은 거룩하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다를 가르고 하늘에 만나를 내린다. 신을 벗고 차가운 마루에 엎드렸던 성스러움이 장상꾼에 외침으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