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진을 입은 다섯 꽃잎에 감춘듯 드러낸 빛난 얼굴이 시리도록 아픈 기억을 세긴다. 물망초 꽃이 말한다 해서 꽃말인가, 나를 잊지마 목매어 지우지 못한 기억을 머금고 눈물이 흐른다. 서른이 넘은 아이가 내가 사는 세상에서 멀어지고 일년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끝자리에서 사라진것은 너 만이 아니었다.  

 

1  가난해서 가난하다

 

하나님은 사람이 가난하다 말씀하신다. 가난해서 가난하고 지닌 일이 아파서 가난하고 기댈 곳이 없어서 가난하다. 가난은 저미는 고통과 이어지는 아픔 절망으로 괴로움을 더한다. 복 있다 말하는 가난한 이는 누구일까. 설교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믿음 사랑 겸손 헌신 봉사가 부족한 이들에게 부어지는 은혜라고 말하지만 우리 안에 말로서 가난한 자는 없다. 가난한 자는 가난해서 가난하다. 

 

뼈를 드러낼듯한 모습으로 십년 만에 나타난 그 아이의 눈이 붉어져있다.  크고 좋은 집에 초대 받아 두사람의 행복을 바라보고 온 것이 엇 그제 같으데 너  아프니 하는 한마디에 눈물 아이가 되었다. 모든것을 잃고 방탕해진 남편은 떠나고 모욕과 모멸감으로 주위를 감추고 어둠에 살았다. 감추인 분노와 숨겨진 원망스런 말들이 터질듯 쏟아진다. 하나님이 보시는 이 아이가 가난해서 가난하다. 그래서 아프다.

 

2  지닌 일이 아파서 가난하다 

 

수가성 옆 우물 곁에서 예수는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낮다. 다섯번 남편이 바뀌고 지금 동거하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다. 박복한 여인은 수치스럼에 멍들고 보호받지 못해 버려질 때마다 주린 목마름에 괴롭다. 살수록 깊은 갈증을 느낀다. 지우려면 다시금 세겨지는 새로운 낙인은 흉한 상처를 만들고 형제와 이웃에게 버림과 놀림을 당한다. 

 

두번째 만난 그 아이는 핏기없는 얼굴에 후회와 연민의 아픔으로 가득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남편은 왜 떠나야 했는지 마지막 말을 듣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정말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아서 어쩌다 지나친 그를 보아도 따라 잡지 못하고 망설이다 하루 한 주 마음이 무너진다. 그늘진 성전에 멀리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는 세리의 기도처럼 (눅18:9-14) 아픈 기억이 죄에 멍든다. 

 

3  기댈 곳이 없어서 가난하다

 

딸을 고치려는 사마리아 여인이 제자들의 뒤를 좆으며 귀찮게 소리를 지른다. 여인을 내좆으려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거룩한것을 개에게 나눠 줄 수 없다는냉혹한 말씀을 하신다. 귀에 흘러든 말이 가슴을 쥐어튿고 소리도 쳐보지만 들려진 한마디에 절망의 끝에 선다. 하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라기를 먹나이다. 모든것이 비워진 가슴에 따듯함이 채워진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7) 버려진 세상에서 누군가 내손을 잡아 줄 수 없다면 들려지는 찬송은 오히려 우리를 갈증케한다.

 

전에 이 아이를 위해 쓴 글이 있다 (주님의 눈물병에 담겨져) 왜 나냐고 원망하는 한마디에 사람이 울고 하늘이 운다. 그때는 몰랐는데 왜 주께서 그 아이를 내게 보내셨는지 지친듯한 먼 기다림이 가난하다. 실상은 부요한것 같아도 헐벗고 가난하게 살다가 마지막 힘을 다해 용서와 사랑으로 지친 세상을 떠난 이 아이가 복이있다. 다시 태어나도 그 사람과 살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이 하늘과 땅에 있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