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바다는 파도를 부른다. 성난 모습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주름진 모습으로 감추인 나약함도 보인다. 그처럼 진화론은 믿는자의 마음과 자녀들의 신앙을 흔들었다. 1925년 3월 부모들과 교회의 입장을 대신한 버틀러는(근본주의자)  진화론은 공립학교에선 가르칠수 없게 버틀러법을 테네스주에 지정케한다. 공립학교 생물 선생 스코프스는 이에 반하여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자유 시민 연대와 함께 자신이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스스로 범법행위를 고발한다. 법정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 말만 존재하는 이상한 재판이 작은 시골 마을 데이톤에서 파도를 일며 밀려나간다. 


1  창조와 진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느니 원숭이를 믿어라. 진화는 창조를 몰아붙친다. 현대인의 눈요기는 크고 작은 화면에서 진실을 가리듯 그들의 원숭이는 거리에서 볼수있고 하나님은 가까운 교회서도 볼수가 없다. 도시는 우혹으로 가득하고 십자가 아래 소리쳤던 이들도 지나고나면 걷고있는 원숭이가 된다. 창조주는 침묵한다. 원숭이는 나의 형상도 아담에 모습도 아니다 사람에 생각과 마음은 주인을 원숭이라 할 만큼 악하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여인을 보면 자신이 아닌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 착각한다. 내면으로 느끼는 자신은 없고 평면 위에 비쳐진 모습을 믿고 산다. 온 세상이 창조의 손길로 덮혀있어도 손에 쥔 작은 스마폰만 못하다. 하나님의 입김을 본듯이 말하고 창조에 시간은 잴듯이 말한다. 부족한 지혜는 모른다 말하면 증명 못한 것들이 만들어진다. 창살 안에 원숭이는 손에 쥔 바나나에 만족하고 파운드에 69센트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생명이고 가치이다.


2  브라이언과 대로우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인으로 부터 변호하고 심판한다. 유대인은 예수가 율법을 범한 범법자이고 십자가에 못박 기를 소리친다. 신이 인간을 심판하기 이 전에 인간은 신을 먼저 심판했다. 아들을 죽이고 그 아버지 또한 죽여서라도 포도원에 주인이 되려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진화를 만들고 인간의 거짓 가르침은 그들에 하나님을 모독한다. 원숭이는 98%에 DNA가 인간과 같다고 외친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왜 모두가 읽기를 지루해 했는지 대로우는 현대인은 과학적으로 진화한다고 브라이언을 몰아 붙힌다.


존제란 그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옮겨지는 것이다. 자크 라캉이란 정신분석 학자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의식이란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길에서 얻지 못하고 죽음의 끝에서도 모르듯이 지나친다. 생각이란 마음을 충동케 하여 새로운 의식에 지배를 유도하지만 길은 변함이 없다. 우린 지혜를 알지 못하고 의심한다. 


3  100달라 벌금형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과 생명까지 헐 값에 팔렸다. 인간은 새로운 별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간다. 보이는 것마다 이름을 달고 주인이 된다. 생명은 박재가 아닌 복재되어 팔리고 우리는 더이상 생각이 필요없는 진열된 소모픔이다. 인공지능은 생각에 주인이 되어 사람을 판단하고 땅과 바다와 하늘에 모든 것들을 지배한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진화될 생명이 있을까. 시간은 생명에서 멀어지고 창조주로 부터 돌아선다.


사람은 실존하는가. 사람들은 질문을 신으로 부터 벗어나 얻기를 원한다. 존재는 지배에서 벗어나 생각을 우상화 시키고 육체에 진화를 고집한 그들은 생각의 진화를 창조라 말한다. 신으로 부터 벗겨진 자유를 외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물질은 정신에 지배자가 되어 창조주를 몰아낸다. 100불을 쥐고 시작 된 싸움이 주인의 자리마져 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