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건너에 죽은 자들이 머믈러 산다. 하나 하나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있지만 떼쓰는 아이 손에 잡힌 캔디 보단 가벼운것 같다. 이토록 산자와 죽은자 사이에 삶이 무겁다. 화려하고 평안한듯 하여도 모두가 음침한 미로에서 걸어 나오듯 다르지 않은 한 길을 걷고있다.


1  다닐지라도


달리는 기차를 타고 긴 터널을 지나면 품고있는 산이 보이질 않는다. 짙은 어둠이 높은 산 울창한 숲 키자란 나무 단단한 암석까지 지우고 달아난다. 감추인 터널 속에서 다윗의 죽을것 같은 두려움과 고통을 주님이 함께하신다.(시22)  인생은 아물기전 찢기고 피하려 들면 부딛치고 모으려 애써도 빼앗긴다. 거짓과 악행으로 가득한 얼굴은.또 다른 희생양을 찾고 싸매고 용서하고 희생하는 주님의 사랑을 부르짖고 가르친다 해도 듣고 행하는 이가 없다. 우리는 고통에 떨며 슬픔에 아파한다. 다를것 같아도 다름이 없는 긴 터널을 지난다.


 마음이 무겁다.  9회말 만루에서 어이없게 병살타를 치고 진 기분이다. 얄팍한 지직만 믿고 입을 떼기도 전에 성령께서 종에 입술을 막으셨다. 구하지 못하고 얻지못한 말씀을 가지고 단 위에  선  거짖 된 나를 죄가 나를 삿다. 주께서 증거되지 못한 말씀은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사죄에 시간을 갖는다. 잊었던 죄인에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상한 마음도 고쳐주시기를 엎드려 빈다. 


2  두려움


죄는 죽음을 부르고 죄인은 심판을 두려워한다.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절망된 두려움이 내 안에 있다. 아무리 선한 일에 힘쓰고 말씀을 좇아 산다 하여도 당연한 일에 자랑을 일삼고 들림받기를 원한다. 인간은 스스로 성결할수 없음을 망각하고 고개를 쳐든다. 나의 판단과 계획이 울무가 되어 죄에 사로잡혀 간다. 정한 심판과 두려움을 염소 뿔에 붉은 띠를 묶고서 광야로 내어 좇는다. 죄를 대신한 죽음의 소식을 기다리며 밤을 지세며 주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는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1:18)


죽음이 두려운 것인가 삶을 심판하는 심판이 두려운 것인가. 우리 모두는 심판에 주를 두려워한다. 삶은 자신의 뜻과 다르게 전개되고 빗나간 화살은 과녁에서 멀어진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도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말씀을 떠나사는 삶이 죄이다. 교회도 죄와 죄인에 대한 명백한 구분이 있어야한다. 죄인 하나가 회계하면 하늘에서 회계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옵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눅15:7)  교회는 죄인들이 머믈며 중생의 가르침과 거듭남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지만 죄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죄인도 스스로 판단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선과 악의 판단은 주께 맡기고 죄는 멀리하는 지혜자가 되자.


3  동행


결혼을 한 새내기 같은 젊은이들이 떨어져 사는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둘이 모아야 살수있고 살기위해 흩어져 산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하늘을을 보며 동행이라 말하며 산다. 손 안에 들린 스마폰에 얼굴을 맞대고 사랑을 말하고 그리움을 말한다. 어쩌다 아픔을 들으면 초절한 모습이 4인찌 스크린에 새겨진다. 내 손을 잡고서 나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만 같이 걸으면 지울수 있는 눈물이지만 마른 눈물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