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눈물이 난다. 아파서 울고 힘에겨워 운다. 눈물로 자란 씨앗은 작은 가슴에 묻히고 다른 시간 속에서 가시돋친 꽃을 피운다. 물들고 찢긴 자국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작은 실수도 용납 못하고 잘못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매장 당하는 세상에서 주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를 당신은 어찌 받아들일까. 하지만 성서는 단 한줄도 우리와 같은 미움과 분노와 갈등을 표현하고 있지않다. 오히려 베드로는 더 사랑받는 제자이고 예루살렘 교회에 수장으로 주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율법에노예가 되었던 바울은 주님을 섬기는 이방인에 사도로 거듭나 그 소명을 다한다. 성서는 그들의 죄악과 잘못을 세심히 기록하였지만 우리들의 마음과 다르게 눈으로 덮히듯 지워지고 녹듯이 사라졌다. 당신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있을까.


우리는 많은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산다. 지은 죄에 용서를 구하고 상한 마음이 위로받기 원하며 찢겨진 가슴이 치유되길 원한다. 세상에 풍요함도 누리고 싶고 욕심만큼 오래 살기도 구하지만 탐욕은 팽팽한 줄다리기 마냥 온 힘을다해 버티어도 끌려만 간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은 버려질 쓰레기더미에서 절망한다. 나의 주를 한번을 부인하고 두번에 기회마져 버려졌을때 남겨진 육신을  보며 통곡한다. 이길수 없는 자신 앞에 격한 슬픔이 몰아칠때에 비록 용서를 구할 시간이 지났어도 주께서 돌이켜 바라보신다. 사랑하니까 너를 사랑하니까. 주께서 다시금 바라보신다.  


2  베드로의 통곡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그 보다 더한 나의 세월만큼 안타갑고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앞섰던 이들이 하나 둘씩 주님에 부름을 받을때면 나도 준비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를 다지지만 베드로가 얻었던 세번에 기회마져 돌이킬수 없던 것 처럼 나역시 모든 기회를 상실한 먹먹한 마음이다. 믿음에 선배들이 눈물이 많았던 이유도 알것같다. 주께서 나를 돌이켜 바라보시면 통곡이 날것같다.


고마움에 감사하지 못하고 욕심내어 말씀처럼 살지못한 괴로움, 주를 배반하고 감추고 팔았던 죄악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내 안엔 어둡고 수치스런 그림으로 가득하다.주께 드렸던 사죄에 기도는 원망과 불평스런 질문으로 가득하고 항시 왜 그러셨냐고 곱씹고만다.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음으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 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40:12)


3  사랑하니까 


아들이 죄를 지을때마다 어머니는 문지방에 못을 박고 훗날 아들은 회개와 갚음으로 하나씩 그 박혔던 못을 다 뽑아냈다. 하지만 문지방에 못자국이 남아있더라는 말씀이 젊었던 가슴에 새겨지고 나역시 가르쳤던 이 말이 너무도 큰 후회로 자라 남았다. 죄에서 돌이켜 멀리하라는 교훈은 됐을지 몰라도 끝없는 후회와 자책으로 지우지 못할 흉터를 바라보고 살았을것이다. 나처럼 죄에 향기는 같은 사죄를 반복케하고 자국은 주위를 검게 물들인다. 창과 방패처럼 믿음과 사죄에 대한 용서가 끓임없게 반복되고 승자없는 싸움에서 지치고 만다. 어리석은 종은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 앞에서 그 잘못된 의미를 지우고 싶다.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요12:47)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정한 부름이있다 말한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우리는 우리들의 믿음을 잣대에 재듯이 평가해 서는 안된다. 주께서 정하신 의미를 벗어나면 소리없는 아픔만을 반복할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믿음을 떠나 사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 아픔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고 마음으로 받아드리자. 때론 부족하고 못나 보여도 당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시다. 효정아 이땅에서 마지막으로 부르는 너에 이름이 평안한 안식을 찾아 행복하리라 믿는다. 주께서 너를 사랑하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