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던 교회에서 돌아선 이들을 보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있다. 그리고 기득권을 갖고 남은 이들은 마치 그들이 성전을 떠난 배교자인냥 비앙거린다. 돌아서 갈등진 이들이 하늘을 향해 묻는다. 우리가 성전에서 내쳐진 사람이냐고 이런 갈등과 반목이 우리 안에 있다. 분명한 진실은 내쳐진 이들이 성도였다면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자들은 교회가 아닌 건물주인가 하지만 남겨져 주님이 안타까와 하시는 사데 교회도 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1)


1  너와 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교회와 가정 이처럼 우리는 집단성이 강한 공동체 안에서 살고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분명한 선이있다. 그것은 너와 나라는 갈림길이다. 금실좋은 부부도 이말을 잘못쓰면 폭탄처럼 터지고만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사는  이세상은 평행선이 없다. 무거운쪽이 기울듯이 차별과 학대 빼앗김과 상처는 상대를 부하고 교만으로 오르게 한다. 손해 보는자가 있다면 이익을 취하는 자가 있다.우리 모두는 알면서도 잘못된 반쪽 이기심에 더 다가서있다.


한동안 옷 장에서 보이지 않던 옷들이 어딘가에 쳐박혀 있듯이 시간은 기억들을 어둡게한다.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이 감춰져 있고 우린 다시금 꺼내지 못할 어두운 기억을 만든다. 이기적인 생각은 상대를 멍들게하고 정당성을 찾고자 속임을 베푼다. 값싼 동정심과 말로 용서를 구하고 구역질나는 얼굴을 쳐들고 산다. 받은 고통은 죽일만큼 미움으로 되 갚고 너와 나는 제비 뽑듯이 죄와 고통를 나눠 갖는다. 다를것이 없는 우리는 같은 화장을하고 산다.


2  너같은 나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보면 많은 이들이 같은 공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옮다고 미리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이 당하는 고통을 보면 피할수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움도 자리하고 가한 이에게는 되값음의 반전을 기대한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본 나는 그와 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도 악인과 다름 없는 가해자라는 사실에 강한 부정을 하여도 울타리 넘어 숨겨진 양심이 소리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악마일것이다. 거울 뒤에 숨겨진 당신에 모습이 진정 거울 앞에 비쳐진 내모습과 같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수 있을까. 과연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용서하고 용서 받을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을 원칙으로 정하셨다면 주께서 정하신 뜻은 무엇일까. 시간은 지워지는 오락물이 아니라 기억되어 언제든 끄집어 낼수있는 두려움이다. 용서는 같은 갚음 없이는 마음에서 지울수 없기에 너와 나의 거짓된 마음은 주께 다가설 용기 조차 없다. 원칙을 무시한 형식적인 믿음은 죄만 가둘뿐 사망의 길에서 벗어날수 없어 고뇌하는 것이다


3  나같은 나


사람에게 다른 이름이 있다면 죄인이란 이름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이 세상에 의인이 없다면 (롬 3:10) 세상은 감옥이고 모두가 갇혀진 죄인 일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죄에 크고 작은 판단 역시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말씀은 모두가 죽음으로 갚아야 될 죄인이란 것이다. 너를 바라보는 내가 너같고 나또한 너와 같기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용서가 진정한 갚음의 용서였다고 말할수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범인이 얼굴을 가리고 미안하다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가족에게 용서를 빈다면 말처럼 주고 받으며 용서가 될까. 절제할 인내심도 없고 그에 말한마디가 되 갚음이 될수 없기에 진정으로 용서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런 통곡의 그늘이 너와 나에게있다.


헬마 그뜻은 나의속격의 복수형이다. 나같은 나 우리이다. 너를 용서 못하는 우리 안에 주님이 함께하신다. 나에 아픔만큼 칼날같은 미움 안에 주님이 함께하신다. 너에게 받은 상처를 위로하시고 악으로 복받쳤던 마음을 용서하신다. 죄인인 내가  할수없는 용서를 주께서 행하시고 원망 들을만한 같은 나에 죄도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용서 받기위해서 용서하는것이 아니라 약한 종을 대신하여 용서 못하는 악으로 부터 구원해 달라는 구함인것이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악으로부터 구원하소서. 거울 뒤에 숨겨진 당신 앞에 비춰진 나에 모습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주님의 모습으로 양각된다. 주여 우리에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